얼마전 Q채널에서, 섹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놀랍게도 그 다큐물의 내용은 거의 이 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빗 부스도 간간이 출연하여, 시청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이 부분에서 우린 두가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TV는 무언가 알지못하던 새로운 것을 시청자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검증되지 않은 이론과 학설로 덧칠된 엉성한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도 있다.
둘째, 직관화의 길에 빠져든 과학은 이미 과학이 아니다.
남녀의 성심리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라는 거창한 선전문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일반적 통념으로 알려진 남녀문제와 성의식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들어, 여자는 돈많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라는 류의 문제. 그 책의 해석은 육아와 사회활동이 보장되지 않았던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먹여살릴 재산과 육아를 책임질 수 있을 성실함, 미래가 보장된 사람을 선호하고,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지속시켜줄 2세를 위해, 미모로 표방되는 건강함을 선호하도록 진화해 왔다는 것.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대신 짜증이 나는데, 그 이유는 과학적 접근 방식이라는 것이 대부분 여러 문화권에서 수집된 설문조사나 엉성하게 연출된 폐쇄적 테스트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미가제 정자 이론'(남자의 정자중에는 기형적으로 생긴 정자들이 있는데, 이 정자가 다른 남자가 사정한 정자의 길을 막기위해 존재한다.라는 이론)같은(TV에 나온 부분임) 부분은, 현재 학계에서도 거의 재미난 발상정도로 치부될만큼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프로이드나 칼 구스타프 융 선생이 그러했듯, 문학이나 신화에 가까울지언정, 현대 정신의학에선 호르몬의 영향을 규명하는 등의 외과적 생물학적 접근법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하여,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란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다면, 레비스트로스처럼 거대한 구조주의적 이론의 틀속에서 논하던지 해야지, 이런 세세한 속담풀이식 방식으론 킬링타임용 토일렛 북이나, 이 책을 번역하고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탄복하는, 지적 호기심특수에 목마른 경박한 책숭배자들의 맥빠진 베스트셀러 널부랭이가 될 뿐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이 책을 폄하하는 이유는 나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충돌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의 통념이 이런식으로 고착화되어, 가벼운 세태를 변호하는데 쓰이는 건 문제 있는거 아냐? (음, 이 역시 균형감각의 압박감에 쓰는 말같군.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나쁜 책이 어딨겠냐! 좋다, 결론을 다시한번 내려주지. 이 책은 나뻐! 됐지?)
서명:욕망의 진화
저자: 데이빗 부스 (번역: 김용석, 민현경)
출판사: 1995.7.10 초판1쇄, 백년도서, 6,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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