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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file #1  :  pyeo.jpg (5.8 KB) Download : 64
subject  :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우연한 이야기고 감상일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집으로 내려오는 추석 귀경 열차는 한 무리의 피난민 혹은 난민 열차를 연상케 했다.

추석임에도 사람들의 행색은 초라했으며, 내 옆자리는 대전까지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3명의 여자와 한명의 남자가 앉았다가, 사라져갔다. 나는 책을 읽다가 깊은 잠에 빠졌고, 맞은 편 좌석에 앉은 어린아이의 꽥꽥 지르는 소리에 가끔씩 눈을 떴다. 그 아이의 엄마는 검은 피부의 머리가 나빠 보이는 여자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대전에 도착했을 땐 밑바닥까지 지쳐버렸다.

폴 오스터의 '폐허의 도시'는 불안정하고, 폐허로 변한 정체불명의 도시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실종된 오빠를 찾으러 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도시에 갇혀버린 안나 블룸의 이야기이다.

세상의 밑바닥, 생존과 인간다움의 틈이 점차 벌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더이상 건너뛰기가 불가능해진 환경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존해 갈 수 있으며, 어떤 양태의 삶을 택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분명 이런 세상은 지금 어딘가에도 존재하고 있다. 70,80년대의 우리나라가 그러했듯, 하루에도 몇번씩 정권이 바뀌는 아프리카의 군소 공화국, 체첸, 라이베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 북한에선 지금도 이런 배경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란 또한 생존을 위해 얼마나 '적응'이란 본능을 잘 진화시켜왔는가!

'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다. .... 그것을 잃을 때면 아, 그런 것이 있었지 하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다시 되찾게 되면 또다시 무심히 잊어버리는 것이다.'-(210page)

얼마전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난 내가 무의식중에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예를들면, 광주사태에 소주를 먹고 투입된 군인들이나, 난징학살을 저지른 일본군처럼, 넋을 놓고있다가 잔인한 짓을 저지르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의 폭력성과 무심함을 드러내지 않는 훈련과, 자기 제어를 위해 늘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한다는 말을 했다.

친구는 '너무 모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건 극단적이야.'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솔직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요즘 기억력이 눈에 띄게 좋지 않아졌다.)

솔직히 요즘은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확고하지 못하다. 어쩌면 이런 식의 생각은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하고, 주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의 괴리에서 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기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야 여자를 제대로 사귈리도 만무하다.

인생의 어느 시점이 오면, 사는 것이 괴로움만 남게된다. 나 역시 대학시절의 나는 아니다. 대학생때, 선배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하며, '이곳 대학도 형편없는 인간들과 기괴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데, 사회는 도대체 얼마나 형편없기에 대학시절이 낫다고 하는걸까?'라며 심지어 기대까지 했던 적이 있다.

표면적으론 이 사회나 조직에 묶여있다는 것이 특별히 대학시절과 다를바는 없다. 그러나, 어떤 환상을 잃어간다는 것이 못견디게 괴로워졌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 나오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환상과 상상에 목말라 하듯, 환상이 없는 삶이란 객관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직시하게끔 만들어 버린다.

모르겠다. 주위엔 사회에 착실하게 길들여진 예쁜 여자들로 넘쳐나고,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결혼도 현실, 인생도 현실, 학벌과 직장도 현실, 돈도 현실. 결국 그 현실이란 말로 모든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가리려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현실은 현실의 탓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다. 현실이란 공포의 단어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가공할 현실속에 놓여졌다 죽을 것이다.

나는 현실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왔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누가 몽상가나 현실도피자라고 비난해도, 그들의 삶과 다르다고 비난하는 행위에 대해선 욕을 할지 모르지만, 그 말에 대해서 화를 낼것 같진 않다.

나는 되도록 어느 조직에든 적응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거리를 두고, 될 수 있으면 불편한 관계로 남고자 했다.

어떤 예쁜 아가씨의 삶처럼, 인생을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게 살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내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요즘은 무척이나 지쳐있으니, 적어도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왠지 마음이 괴롭다.



제목: 폐허의 도시 (in the country of last things: 종말의 나라에서)
저자: 폴 오스터 (Paul Auster)
역자: 윤희기
출판사:열린책들 2003년 2월 초판 4쇄, 8500원, 영등포역 구내서점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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