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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subject  :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생각해보니 이렇게 두꺼운 책을 줄까지 쳐가면서 꼼꼼이 읽은 적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독후감은 아래쪽에...

‘공감의 시대’는 총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호모 엠파티쿠스가 공감과 인간과의 관계를 개체발생적 차원에서 서술했다면 2부는 에너지(엔트로피의 증가)를 통한 사회의 발전과 커뮤니케이션 발달을 큰 축으로 한 계통발생적 차원의 고찰을 꾀하고 있다.

3부는 현 시점에 우리에게 닥친 엔트로피의 위기를 살펴보고 그 대안으로서의 공감확대를 주장한다.

2부의 주요내용을 살펴보자면,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이란 구도가 눈에 들어온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를 시간흐름 순으로 서술하면서 생산양식의 발달과 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을 이야기한다.

구석기 시대인들이 집단속에 파묻힌 희미한 자아를 지닌 존재였던 반면, 신석기 시대는 경작이라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변화를 이뤄낸다. 이는 정착과 인구증가를 가져오고 생명을 가꾸는 행위가 내포한 유기체간의 상호의존성이 강화되는 한편, 저장된 곡식이라는 최초의 자본이 생겨나게 된다.

이후 인류문명의 여명기에 등장한 주인공은 수메르인이었다. 그들의 관개문명은 최초의 도시형태의 사회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에서 시스템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는 다시 문자의 탄생을 이끌었으며,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사회체제정비로 이어진다. 이 최초의 법전에서 불평등한 자아가 생겨난다.

관개문명의 발달에서 또한 유의하게 볼 것은 종교적 의식의 발전이다. 인간이 관개문명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게 되면서 신은 권력을 지닌 왕의 모습으로 변모했고 이는 다시 강력한 일신교로 이어지는 밑바탕이 된다.

이러한 신화적 종교에서 신학적 종교로 이행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구두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를 부연한다. 구두문화가 집단적이라면 문자문화는 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통해 개인적인 사상과 경험을 내면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자의 발달은 역사의 기록을 가능케 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관념은 개인의 역사를 상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신화속의 인간은 현재에 살지만, 즉 영원한 회귀이지만, 자아의 등장은 고유하고 반복될 수 없는 개인사를 지니기 때문이다.
종교의 발전과 공감의식에 대한 각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자를 사용하는 고대 문화권에 광범위하게 나타났으며 이른바 차축시대가 공감의식이 꽃을 피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의 발전은 토양 염분화라는 엔트로피 증가로 쇠망하게 된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것이 로마다. 고대 관개문명이 꽃을 피운 로마는 제국의 전지역을 이어주는 도로망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권을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식민지로부터 물자를 빨아들이는 한편, 거대한 국제도시로서 기능했다. 종교적으로는 개인의 구원과 공감에 바탕을 둔 기독교가 큰 호응을 얻게 된다. 공감의 물결은 종교적 차원 뿐 아니라 아이 학대 금지와 같은 보편적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로마 역시 공감의식의 확장과 함께 필연적으로 나타난 엔트로피 증가로 인해 막을 내리고 다시 유럽은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유럽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중세말, 수력과 풍력의 이용이라는 새로운 동력이 선보이면서부터다. 크게 늘어난 농업 생산량은 신흥 중산층의 등장을 이끌었고, 15세기에 시작된 인쇄혁명은 개인의 창조성을 복돋우고 개인의식을 강화했다. 이는 연애결혼이라든가 자녀에 대한 교육관의 변화를 불러왔다. 자유시장에 대한 요구가 거세졌고, 민족국가라는 이데올로기 체제 유지를 위해 교육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근세 초의 의식혁명을 가능케 하였고 인간의 의식은 크게 신장된다. 결국 근대에 이르러서는 이성과 감성으로 이뤄진 인간에 대한 정의가 갈등을 빚는 시대가 된다.

그러나 중세 역시 주요 에너지원을 이루던 나무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것이 1차 산업혁명인 석탄과 증기기관의 발달이다. 산업혁명은 도시화를 가속화 시키고 경제체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성을 강조한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낭만주의는 인간 본성의 뿌리를 찾는 여정이었으나 기계적 산업문명을 꺼려하는 그들의 태도는 공감의식 성장이 문명과의 변증법적 과정에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1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인문주의 르네상스, 감정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2차 산업혁명이 태동한다. 2차 산업 혁명은 석유로 가동하는 내연기관과 전기의 발명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은 다시 한번 비약하게 된다. 객관적인 진리나 사실을 부인하고 다양하고 열린 관점에서 사고하는 시대정신이 지배하게 되고, 인간에 대한 연구도 심리학적이며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결국 저자는 앞서 말한 대로 인간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이어 2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발달시킨 인간의 공감능력의 확장과 에너지의 흐름으로 볼 수 있는 엔트로피와의 관계를 통해 공감의 시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 수업에서는 2장에 대해 주로 글쓰기 전략에 대한 평가가 많이 있었고, 논지 전개가 연역적인가 귀납적인가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1장과 같이 인간을 분석하고 2장과 같이 역사를 살피며 통사적으로 공감을 살펴본 것은 분명 전략상 흠잡을 데 없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논지의 전개를 경우에 따라서는 (글의 흐름 자체는 귀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역적이라고 느끼는 태도에서는 글의 독해에 뭔가 불편함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즉 역사의 흐름을 ‘공감의 시대’를 향해 일관되게 변증법적으로 진화해왔다는 주장은 푸코가 비판한 인간주의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푸코는 역사는 차례로 보다 좋은 것이 연속적으로 현현하는 과정이라는 인간주의적 진보사관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역사의 흐름이 지금과 같은 현실에 이른 것은(마치 리프킨의 논지전개처럼) 예정 조화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이 배제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가 탐구한, 역사에서 배제되어온 광인, 신체, 성에서 역설하고 있는 것도 지식 뒤에 숨어있는 담론의 위험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사분란하게 한 방향을 향해 주장하고 있는 ‘공감’ 역시 어쩔 수 없는 담론화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이 사물로 구성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지식은 담론으로 구성되며, 그 담론을 지배하는 권력이 배후에 작용하고, 여기서 침묵의 문제(배제)가 생겨난다는 도식을 떠올려 본다면 지=권력을 낳는 표준화의 압력 속에서 공감의식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어떠한 지식도 이러한 역설을 극복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공감이 지닌 한계에 대한 자기언급이나 타자화된 비평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에너지-커뮤니케이션 관계다. 리프킨의 주장에 따르면 공감의식 혹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확대와 엔트로피는 부의 관계다. 그 논리적인 도식은 에너지 혁명이 사람들을 모여 도시를 이루게 하고, 도시생활 속에서 관계의 필요가 발생하며 여기서 커뮤니케이션-공감의식이 확장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정신문명에 앞선 산업문명이나 사회체제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세계사적 엔트로피의 흐름이란 설명은 상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잠재력을 축소평가 하는 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듯 하다.

세계사적 흐름 속에 인간의식의 확장이 산업적 기반이나 문명을 추동한 예는 리눅스와 같은 최근의 현상으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강제개화 이전까지 산업화의 길을 걷지 않았던 기타 농업국가의 의식발전을 볼 때에도 보편타당한 논리라고 주장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만들어낸 관개문명, 로마와 같은 대제국의 탄생, 1, 2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엔트로피의 위기를 극복했던 예를 찾아 볼 수 없었던 것도 그러한 논리적 프레임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가이아 이론이나 생태권과 같은 개념이 발전, 공감이란 시대정신으로 전지구적인 엔트로피 극대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히려 책의 논지 전개상 (인간의 의식과 엔트로피가 조화를 이뤄 극복한 예가 거의 없었다는 이유로) 다소 암담한 미래상을 예견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프킨의 공감이 현시대에 던져 주는 의미는 공감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담론에 앞서 오히려 인간정신과 물질문명의 관계에 대한 재고찰에 있다고 본다.

그것이 공감이 되었든 다른 이데올로기가 되었든, 현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상실해버린 인간다움의 자리와 유대인 학살과 같은 참담한 이성의 실패를 경험한 1,2차 세계대전 이후, 상처로부터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던 인간을 긍정하고 격려하며 다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돌아보자는 것. 포스트 모던한 세상 속에서 새로운 인간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 그 안에 진정한 이 책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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