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간호사였다. 핑크색 가디건을 간호복위에 입고 환자를 위로하는듯한 둥글고 따뜻한 눈매를 지녔다. 백의의 천사가 되세요! (물론 난 천사랍니다.)라는 메세지가 몸 전체에서 풍겨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전엔 출납계 은행원이기도 했다. 깨끗하게 손질된 손톱으로 들고 있는 통장은 너와 나 누구에게나 미래를 대비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듯한 신뢰감을 줬다. 언제나 365일 친절하게 상담해드립니다. 주5일 근무로 바뀐데다가, 은행 업무시간 역시 과거에 비해 놀라울 만큼 줄었지만, 야무지게 다문 입가를 보는 고객들은 언제나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 버팀목이 되어주리란 것을 의심하지 못했다.
이거 어째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그녀는 여군이기도 했다. 짙은 눈썹과 30도로 하늘을 향한 눈빛은 적을 일망타진할 듯 절도가 있었고, 거수경례의 팔굽각도도 FM, 그대로 였다. 군인이 아닌 그녀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한민국 최강 여군! 말 그대로다.
이 세계의 일이란 그런것이다. 세상에 정형화된 법칙이란 게 어디 있기나 하단 말인가? 증권회사 근처 룸싸롱의 새끼마담은 말한다. '물장사 수십년째지만, 호황일때 수백만원씩 뿌리는 놈은 많이 봤지만, 증권회사 나갈때 돈벌어 가는 놈 하나 없더라!' 과연 세상은 그런 것이다. 룰되로 돌아간다면 이게 세상이겠는가? 영등포 역앞에 쓰러져 노숙하는 인간들이 생길리가 없단 말이다.
그러니 그녀의 친구 언니가 하는 구제 명품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간호사가 되고, 은행원이 되고, 여군이 된 그녀를 이상하게 보지 말길 바란다.
사실 처음엔 명품을 맘껏 입어볼 수 있다는 친구의 꾐에 가벼운 맘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가벼운 맘. 늘 이게 문제다. 일본 사소설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나쁜 문학을 만든다'는 말을 했다. 문학을 잘 모르는 분들은 그냥, '맘처럼 되는 게 없다'란 뜻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이 가벼운 마음. 가볍다는 것. 가벼우면 물에도 뜨고, 더 가벼우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도 있다. 문제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가 문제다. 물고기란 소리를 듣는 당신이 가볍다면, 수면위로 떠올라 숨을 헐떡이다가 갈매기에 채이거나, 낚시꾼의 뜰채로 들어갈 것이다. 당신이 헬륨 풍선이라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다가, 기압으로 인해 팽창하다가 결국 펑! 터지고 말것이다.
문제는 가볍다는 것 속에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공간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물고기는 머리가 비었고, 부레도 비어있다. 풍선은 얇은 고무막을 빼면 온통 헛점과 공간이다.
아까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그녀는 가벼운 맘으로 일을 시작했다. 빙고! 그렇다. 여기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은 아주 간단했다. 물고기가 수면위로 떠오르거나, 풍선이 하늘로 치솟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간단하다. 옷을 입고, 간단한 포즈. (앞 모습, 뒷모습, 옆 모습, 기껏해야 다리를 앞으로 약간 뻗어 치마폭이라든지 핸드백 또는 구두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게 전부다) 찰칵! 당연히 얼굴은 나올 필요도 없다. 포토샵으로 간단하게 뿌옇게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다.
(출장 다녀와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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