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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subject  :  (인물과 사상 99-4) 강준만식 글쓰기의 독선과 함정
아래 글은 대학시절, 강준만 교수께 써보낸 글이다. (아주 개인적인 소회를 밝힌 편지일 뿐인데 잡지에 게재되고 말았다.) 이런 장문의 글을 쓸만큼 사회참여적인(?) 열혈청년이었다는게 지금의 나로서도 신기할 따름이다.
어떤 식으로든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물론,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바뀌어 있듯, 여기에 썼던 이야기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뭐 장단점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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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선생님께.

선생님에 대한 지지의 표현과 그와 비슷한 정도의 '우려'의 감정을 안고 이 글을 씁니다. 선생님께서 주장하시는 실명 비판에 대해서는 저도 두 손 들고 환영하는 바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선적인 지식인들의 말장난과 속임수는 분명 사회악으로 응징받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저도 '강준만 텍스트'가 갖고 있는 실명 비판과 권위주의 세력 비판에 대한 선각자적 의의를 높게 평가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러나 강준만식 글쓰기에 내포된 독선과 함정입니다.

저는 단행본 {인물과 사상} 제3권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대개가 하나의 고정된 흑백논리의 원칙으로 씌어지는 듯합니다. 자신이 어떤 이유에선지 호감을 갖는 대상이라면, 그의 다른 악행과 오류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돌리고, 한 번 안 좋은 감정을 가진 대상이라면, '그가 이러이러한 면도 있으나, 그것은 접어두고……'라는 식으로 넘어간 후 신랄한 비판의 칼을 휘두릅니다. 혹 선생님은 '매우 억울하다. 당신이 내 글의 행간을 잘못 읽었거나 그건 오해다.'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나, 그런 오해를 가능케 하는 무언가가 글에 의미심장하게 박혀 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아니면 한 번 쓴 글은 잘 돌아보지 않는 솔직함이 은연중에 선생님도 모르던 내면을 드러내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지요.

<김용옥의 화려한 투쟁>에서 선생님은 그를 천재로 규정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으신 듯합니다. 전에 {김대중 죽이기}에서 김용옥을 죽이던 때와는 태도와 관점이 백팔십도 바뀌었습니다. 마치 김용옥을 매몰차게 단 몇 줄로 죽였던 것에 대한 자책감에서 쓴 변명 같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사실 선생님과 같은, '뭔지는 말 못 하겠지만 무엇인가 천재 같은 구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식견이 없는 범속한 제게는 오히려 시테크 활용을 잘 하기 때문에 천재적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은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그가 왜 천재인지를 확실히 밝혀 주었어야 합니다. 그런 이후에야 그의 비열한 행위가(그의 행동을 다른 교수가 했다면 분명 그렇게 말했겠지요?) 천재의 치기로 정당화될 수 있으며, 이 빈약하기만 한 에피소드 나열식의 김용옥 위인전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었겠지요. 김용옥이 학자라면 그 역시 학문으로 천재성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저 축구 선수는 축구는 못 하지만 당구가 800이야'식의 논리는 지면 낭비일 뿐입니다. 여러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어떤 저의를 의심케 하는 지나친 관대함은 도리어 김용옥을 욕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설사 그가 천재라 할지라도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굽신댈 수 있는 정도의 성품을 갖고 있다면 이것은 치기 정도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사유화는 위선적 지식인의 전 단계 또는 그 양면으로서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가 솔직하기 때문에 위선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그토록 주장하던 냉정한 비판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이문열에 대한 비판도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그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문화권력에 제동을 걸어 준 것은, 이씨 자신을 위해서나 독자를 위해서나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문열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씨가 신문지상에서 저질 논쟁을 벌인 점은 매우 유감이었습니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결국 이문열은 자신에 대한 해답을 문제가 되었던 소설, <사로잡힌 악령>에 이미 기술해 두었다고 말입니다. 악령에서 주인공이, '위선적이고 불의한 자도 훌륭한 문학을 할 수 있는지'를 묻자, '그럴 수 있다'고 하는 대화가 나오는데, 이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이문열의 작품이, 곧 훌륭한 이문열의 인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순원씨나 다른 평론가들의 우호적인 태도는 결국 이문열 문학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은 작품과 작가를 따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이문열 정도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미욱하나마 순진한 변명은 오히려 정당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반면 선생님의 글을 읽은 어설픈 독서광은 일순간에 이씨의 소설을 폄하하고는, 누군가 이씨의 소설을 들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로군!'이라며 우쭐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선생님이 이씨를 양심적으로 비판하고자 하셨다면 이씨의 문학 작품과 이문열 자신과는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강조하셨어야 공평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문열의 수작들이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이문열 자신이 초래한 일일지라도 안타까운 일이고, 문화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정운영 한겨레 논설위원에 관한 글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도, 왜 선생님이 정운영씨를 비판하는지 그 논거를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예를 들면 선생님은 정씨가 외국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글을 못 쓰느냐는 식으로 질타했는데, 이것은 부당합니다.

우선 정씨가 외국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글쓰기 스타일과 학문적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씨는 대개의 글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다소 고전적인 글쓰기 방법을 선택합니다. 결국 그 이야기라는 것이 몸통을 치장하는 하나의 작은 깃털과도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끔 외국 이야기가 나온다고(실제로 정씨의 글에서는 한국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눈을흘기는 것은 한식 뷔페에 오렌지주스가 있다고, 엉터리 한식 뷔페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발상입니다.

또 한 가지, 정운영씨는 이론적으로 주류와 비주류 경제학 모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게다가 분야가 순수경제학이 아닌, 정치경제학이다 보니 외국 이야기를 빼놓고는 글이 될 수가 없습니다. IMF가 온 것은 한국민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이 진리가 아닐진대, 정치경제학자가 외국과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함수를 빼놓고 글을 쓴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겠습니까? 코끼리를 코를 빼고 그리라는 것과 같은 억지 아닙니까? 학식이 많은 선생님이 이런 기본적인 상식을 모르셨을 리 없는데, 저는 참 의아하기만 합니다.

또 한 가지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비판은 정운영씨의 글이, 교양주의에 물든 학생들이 교양삼아 볼 뿐, 어떠한 구체적 행동에도 이르지 못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감정적 비판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진심이라면 더욱 잘못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다시 문제는 언론플레이다}에서 기자 지망생들에게 '보수적'인 조언을 해 주겠다면서 '언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지 않아도 좋고 현실과 타협해도 좋으니 제발 언론고시생 시절의 생각만은 바꾸지 말아 달라'는 아주 듣기 좋은 감상적인 말씀을 남기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씨의 글은 읽어 봤자 행동하지 못하는 교양주의 대학생을 만들 뿐이라는 식으로 말씀해 놓고(이 또한 관념적인 추측일 뿐입니다), {다시 문제는 언론플레이다}에선 행동하지 못하고 비굴하게 타협해도 의식만 갖고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무슨 이상한 이중 잣대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선생님은 그토록 말재주를 피우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이건 웬 유행 지난 말재주입니까?

선생님이 제가 행간을 잘못 읽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정운영씨의 칼럼을 읽고, 처음으로 제주도 4·3 항쟁의 진실을 배웠고, 한국의 경제가 어떻게 강대국들에 휘둘려 왔는가를 배웠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손쉽게 무시하는 사회주의와 마르크스 경제학이 단순한 공산주의자들의 욕심을 채우려던 구호가 아니었다는 것과 이것도 민주주의와 똑같이 우리 인류가 이루어낸 소중한 문화적 재산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지금, 유럽 사회 좌파 정권의 탄생과 '제3의 길' 등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 신입생에게 이런 의식을 심어 주는 것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현실적으로는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교양주의자를 길러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을 잊지 않고 언젠가는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이 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운영 칼럼은 그것만으로도 값지고 소중하다고 하겠습니다. 순수 학문의 세계로 돌아가 연구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우파적인 시각이 득세하는 비좁은 경제 칼럼의 마당에서 좌파적인 시각을 제공해 국민의 균형 있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것도 경직된 한국의 상황에서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책에서 지역감정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되었고, 한국 언론의 굴욕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또 그런 책들을 통해 좋은 책들과 학자들을 발견한 것도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몇몇 글에서 비쳐지는 편협하거나, 또는 편파적인 시각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글을 한 번 쓰면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집필 태도는 무책임합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선생님께 한 번이나마 생각할 기회를 드리는 것이 제가 선생님의 글을 아끼는 실천이라고 생각이 되어 이렇게 편지를 올렸습니다. 언제나 시작하는 자는 외롭고, 악습의 패러다임을 깨부수는 데에는 힘이 듭니다. 선생님의 계속되는 건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끝)

44  (비평) 덧붙이는 글  snowcountry 2005/02/12 1883
43  (비평) 기사쓰기의 ABC를 알려주마  snowcountry 2005/02/12 3460
42  (인물과 사상 99-6) 강준만 교수의 답변  snowcountry 2005/02/12 2023
 (인물과 사상 99-4) 강준만식 글쓰기의 독선과 함정  snowcountry 2005/02/12 2002
40  (글) 옛날 일기를 읽다  snowcountry 2005/02/11 2045
39  (글) 오빠가 돌아왔다.  snowcountry 2005/02/05 2225
38  (글) 중국 연수기  snowcountry 2005/01/31 2102
37  (글) 명장면  snowcountry 2005/01/30 2159
36  (소설)그녀와의 대화  snowcountry 2005/01/23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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