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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subject  :  (비평) 덧붙이는 글
원래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박 재반박이 제 꼬리를 물려는 호랑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법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호랑이가 치즈로 변하면, 따끈한 밥위에 얹어 먹으면 그만이겠지만, 이건 그럴수도 없으니, 정력의 낭비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기사를 인정에 호소하면서 옹호하고, 어긋난 논리로 호도하려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이 글을 쓰게되었다. 딱 한번만 쓰기로 하고 썼다.

좀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난 학생시절의 대학교 학생회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다. 개중엔 정말 형편없는 녀석들이 단지 자신이 서있는 자리가 정의에 가깝다고 해서, 자신의 인격조차 고양되고,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만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멸에 앞선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런걸 한마디로 말한다면,

'유치 뽕'

이다랄까?


현실 참여, 다 좋은데 그렇게 유치하게 놀거라면, 그냥 회의주의자가 되는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뭐 굳이 이야기하자면, 따근한 밥위의 스르르 녹는 치즈만큼정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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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을 깨는' 발언은 논리의 패배다.

기사의 문제점과 기자의 자질에 대해 비평 및 비판을 가한 몇몇 글들에 대해, 감정적인 리플로 대응하고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이성과 지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류의 사람들을 마주 칠 때가 종종 있기에 이 기회에 그 분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감정적 비판의 주요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이라크에 가서 종군기를 써라.'
'보기 싫으면, 안보면 될것 아니냐!'
'도사(공자를 잘못 쓴듯)앞에서 문자 쓴다.'

**일보에서 좋은 영화평을 쓰시는 이** 기자가 말했듯, 위와 같은 대응은 '판을 깨는' 소리일 뿐입니다.

그런 논리를 대응시켜 예를 들어 보자면, IMF 환란을 가져온 행정관료와 타락한 정치인, 경제계 인사들과 비교해, 학벌이나, 관련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 시민들은 입을 막고, 달게(?) 고통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자처럼 영화평을 쓰는 영화 평론가들은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명작 영화를 만들어봐!'라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영화 연출계에 입문해야만 할 것이며, 박찬호 야구중계를 해설하는 해설자는 150킬로 이상의 강속구와 폭포수같은 변화구를 박찬호 이상으로 잘 구사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서울대 외교학과와 하버드 대학원을 나와 중앙 일간지 기자로 일하는 사람 이외엔, 강기자의 기사에 대해 비판을 해서는 안된단 것입니까?

기자는 정보와 지식을 전하는 시대의 소리 역할을 하는 전문인이지, '공자'도 더더욱이 무슨 '도사'도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런 언론관은 일반 독자를 노예로 상정할때만 가능한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사를 읽을땐, 기사의 가치와 윤리성, 전문성, 시의성 등의 요소로 판단할 뿐이지, 그 기사를 쓴 사람의 성별이나, 학벌, 미모, 경력 등의 외부적 요소로 판단해선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신문에 실리는 기사와 사설이 적극적 의미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감당해 낸다는 측면에서, 보기 싫으면 보지마라!라고 요구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언론이 누리는 취재의 자유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모아져 성립된 것이며, 그렇기에 제4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통제는 정부나 권력 집단의 것이 아닌, 당연한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사의 완성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야말로 우리 언론의 자유와 건전성을 해치는 사회악입니다.

2. '입장주의'를 청산하자.

이 발언은 과거 어떤 교수가 썼던 글에도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같은 입장주의가 암처럼 만연해 있음을 봅니다.
강기자의 글을 옹호하는 입장에 계신 분들은 공통적으로 '전시상황의 위험, 공포와 열악한 환경, 인간적 한계 상황'등으로 변호합니다. 네, 충분히 이해가 갈듯합니다. '네가 그 입장이라면 그 보다 더 잘하겠느냐?'라고 되묻는다면, 글세, 솔직히 자신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질문이 서있는 그 위치 자체부터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입장주의란, '네가 그 입장이라면?' 또는 '그 입장에 서보면, 달라!'라는 역지사지의 동양적 미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입장주의는 필연적으로 가치관과 도덕성 또는 윤리성의 혼란을 불러옵니다.

우리는 지금껏 자라오며, 너무도 많은 입장에 설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특히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룰에 관련되어 설득력있는 변호방법으로 쓰이는 위험한 상황을 봅니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수뢰혐의로 붙잡혔다.'란 소리를 들었을때에 어느 누군가는 '견물생심이라고, 돈과 권력이 있는 자리에 있는 데도, 눈 안돌아가는 사람이 어딨어? 네가 그 입장이 되어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부인이 바람 피우는 것에 격분해 몽둥이로 사람을 때렸다.'라는 말을 들었을때, '야, 네가 그 남편 입장이 돼봐'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입장주의엔 인정과 사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사회적 정의나 룰은 없습니다.

UN안보리 1441호 결의가 있었음에도, 미국이 자발적 군사제재에 나선것은, 9.11테러의 보복을 바라는 갈망과 (명확한 증거조차 제시되지 않은) 대량살상 무기로부터 미국의 안보를 지켜내겠다는 측면에서, 미국민의 입장에선 이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국제적 정의와 절차에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에 석유전쟁이란 매우 타당한 이론을 차치하고 서라도, 그 전쟁의 정당성에 치명적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강기자가 처해있는 위험과 열악한 환경 등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어려운 입장을 들먹이며, 본연의 책무 소홀이나 문제점에 대해 관대해라 라고 말한다면 그건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신문사의 입장을 포기한, 가족 구성원 및 인정적 집단에서 바라본 신문사 식구들의 입장일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미 국방부가 선별 모집한 종군기자 프로그램 ‘임베드(embed)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 편향의 기사가 나올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종군기자는 소환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빠르고, 생생한 편향된 보도보단, 느리더라도 정확한 시야를 담보해줄 균형적인 기사이기 때문입니다.

3. '성 차별'발언을 하지 말라.

개중에 사람들은 강기자를 가리켜, '여자의 몸으로'라던지, '미모의 여기자'라던지, '군대도 안가본 여자'가 라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강기자를 칭찬하는 말일지라도, 욕된 언어이며 성차별입니다. 강기자는 한국 언론사의 종군기자이자 미국 전문가로 파견된 것이지, 사막 모래바람속에 검은 생머리 질끈 동여맨 여성기자란 그림을 상상하라고 보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강기자가 프로라면, 그녀 역시 이 말에 심한 거부감을 느낄 것임이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그녀의 프로근성과 직업정신을 부추겨, 좋은 글을 쓰게 하려면, 이런 말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말을 쓰신 분들도 좋은 의도였음엔 동의합니다만...

4. 강기자에 대한 애정의 글

일요일인 오늘 들어와 본 **일보엔, 내가 아는 강**이란 란이 신설되어 있어서, 들어가 글을 보았습니다.

동료 기자로서 또는 후배기자로서의 애정이 묻어난 글이었습니다. 자고로 회사에서의 동료애가 이정돈 되어야 사람 살맛나는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20년 지기이신 산업부 강기자의 글에도 이상한 점이 눈에 띄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군요.

강기자는 처음 난장이자 카오스인 이번 전쟁을 보는 시각의 다양함을 언급하며, '각자가 보고 싶은 무대 한 편의 진실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서두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국제정치의 지평에서 보자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적 수단의 연장선상에' 있다라는 고전적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정의를 사용하며, 그 가치관의 충돌사이에 놓여있을 동료기자의 '입장'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객관적 이론 역시 편향되었을 수도 있다. (마치 대학 교양시간에 읽었던 E,H 카아의 우리가 객관적이라 생각하는 역사도 역사가의 해석일 뿐이며 객관적 역사란 없다란 말을 떠오르게한다.)라고 말하며, 예시를 드는데,

'미국 언론, 아랍 언론을 통해 숱하게 쏟아지는 전쟁 관련 보도가 객관적이라고는 하지만 각각 자국의 national interest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는 이유도 그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미안하지만, 정상적인 독자 어느 누구도 미국 CNN이, 아랍의 알자지라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는 우리 언론이 미국의 '부분의 진실'을 부풀려, 커다란 오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종군 여기자’라는 ‘흥행’ 요소 때문에 독자들의 관심이 엉뚱한 데로 쏠리거나, 또 과도한 요구가 쏟아지는 것도 봤습니다.'라고 말하는 데, 독자들의 몇몇 관심이 쏠리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것으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기사를 써달라는 것이 과도한 요구였다면 할 말없습니다만......

한편,

'이건 전쟁영화도 아니고, 사막과 전장은 너무나 넓습니다. 좀더 입체적인 취재를 하자면 강 기자 혼자서 모두 커버해야 할 몫도 아니고, 보다 많은 취재인력이 투입돼 다각도에서, 또 여러 지역에서 취재를 해야겠지요. 그러므로 ‘미국의 종군프로그램’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만큼이나마 전장 깊숙이 접근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그동안 국내 언론환경에 비추어 보자면 매우 진일보한 취재방식이었다고 봅니다.'

라고 말하는데, 애초에 이 종군 프로그램은 국내의 언론환경과 상관없이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면서 사상 최초로 종군기자 프로그램인 ‘임베드’를 기획해 전 세계 언론사 기자들에게 전쟁보도를 할 수 있는 선전 기회를 제공하고 나선 것'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그 종군기자들 마저, 그라운드 롤을 비롯한 갖가지 취재제약에 묶여 제대로 된 활동마저 보장받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그 종군 프로그램에 참여한 개가를 높이 사야 한다가 아니라, 제대로 된 취재가 불가능하고, 기자의 생명 위협이 높은 취재지에서 철수시켜, 기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제대로 된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전쟁은 가엾은 이라크 민간인들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라 군복만 벗으면 ‘침략군이라는 비난’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미국의 군인 신분’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워져 소중한 한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미국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일견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만, 지금까지 9.11테레에서 숨진 미국인에게 받쳐진 헌화가 많았겠습니까? 아니면, 명분없는 전쟁속에 숨져간 힘없는 중동민간인에게 쏠린 관심이 많았겠습니까?

이게 객관적이고, 역지사지의 입장입니까? 죽어나간 민간인도 불쌍하지만, 침략 군인들의 입장도 헤아려달라. 그런 말은 일제시대때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도 불쌍하지만, 시대 정황상, 살아남기 위해 일제 앞잡이 노릇한 사람의 입장도 헤아리고, 독립운동가를 고문해야 했던 일본 전범들의 양심의 가책도 헤아려 줘야한다란 주장과 뭐가 다릅니까?

그게 상식적인 사고의 틀입니까?

또 다른 최기자의 경우엔,

강기자가 미국 전문가임을 내세워,

'인간적인 교류를 가지면서 ‘미국 파워엘리트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미국을 움직이는 인사들로부터 세계를 경영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강대국이 갖는 오만함을 느꼈지만,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해 편협하리만큼 집착하는 그들의 다른 모습도 보았다.'

뒤이어

'이라크 사막에서 미군을 취재, ‘미국의 생각’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을 알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미국이 좋든 싫든 초강대국인 만큼 ‘미국의 생각’을 알아야 이라크 전쟁의 끝이 보이고, 그에 따른 예측도 가능할 것이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만약 강기자가 그런 미국의 전문가라면, 영어 잘한다는 점을 내세워 현재 워싱턴과 전쟁에 대한 견해차를 두고 있는 군전선의 통제된 상황에 놓아 둘것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끝낼것이냐 하는 결정이 이뤄질 워싱턴에서 '파워엘리트' 인맥을 이용, 계속 취재를 하는 것이 올바른 데스크의 판단이 아닐까 합니다.

더불어 파워엘리트 사이속에서 인간적 교류를 한 사람과 '인권' '민주주의'에 편협하리만큼 집착한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런 상황에선 미국적 가치관과 입장에 보다 더 쉽게 감정이입이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엔 아랍의 파워엘리트와 교제하며, 그들이 섬기는 알라를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로 인해, 가끔 보는 중동권 영화들 사이에서 보이는 그들의 순수함마저 이상하게 느껴지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두 분 기자의 발언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도 이같은 기본적 균형감각이 결여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파병 찬성과 반대로 나라가 시끄럽지만, 과연 어떤게 국익을 위하는 것인가?란 논란이전에, 한 국가의 죄없는 민간인이 일방적이고도 대량으로 죽게끔 되어있는 이번 전쟁에서, 전쟁을 일으킨 힘센 자의 입장에 우리가 서야만 한다는 것이 자괴감과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한 미국의 반전운동가는, 이라크 전쟁을 미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하는 것에 대해, '이라크에 쏟아 부을 미사일과 전투기를 만들 비용으로, 70%의 미국인을 교육시키는 데 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의란 고귀한 꽃은 탱크와 죄없는 민중의 원치 않는 핏속에서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국익을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고하시는 강기자의 건강한 귀환을 바랍니다.

 (비평) 덧붙이는 글  snowcountry 2005/02/12 1882
43  (비평) 기사쓰기의 ABC를 알려주마  snowcountry 2005/02/12 3460
42  (인물과 사상 99-6) 강준만 교수의 답변  snowcountry 2005/02/12 2023
41  (인물과 사상 99-4) 강준만식 글쓰기의 독선과 함정  snowcountry 2005/02/12 2002
40  (글) 옛날 일기를 읽다  snowcountry 2005/02/11 2045
39  (글) 오빠가 돌아왔다.  snowcountry 2005/02/05 2225
38  (글) 중국 연수기  snowcountry 2005/01/31 2102
37  (글) 명장면  snowcountry 2005/01/30 2159
36  (소설)그녀와의 대화  snowcountry 2005/01/23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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