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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subject  :  (글)아름다운 시절
대학시절 친구가 그랬었다.
'돈도 없지, 여자도 없지, 시간도 없지. 도대체 네가 가진게 뭐냐'

본관 2층에서 문학강의가 있었다.
검은 두루마리를 입은 꼬장꼬장한 교수님이 시니컬한 목소리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엄중히 꾸짖곤 했다.
난 그 수업이 좋았고, 강의실이 좋았다.
함께 수업을 듣는, 얼굴은 모르지만 진지한 학생들이 좋았다.

창밖을 내다보면, 봄에는 녹음이, 가을엔 커피색 낙엽이 날렸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곤 했다. 좋은 책을 찾으면 읽은 다음, 고심끝에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가끔 친구 녀석과 교정에 있는 작은 언덕에서 맥주를 마셨다. 학교는 늘 푸르렀다. 젊고, 웃음이 가득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콘트롤 할 줄 몰라 휘청거리는 초능력자 같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반은 심오하고, 반은 치기어린 생각을 나눌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또 정서적으로 통하는,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들이 가끔씩은 내 걱정을 해줬던 것도 고마운 일이다.

졸업식이 끝나고, 사은회에 갔던 날.
최고의 퀸카이자, 늘 학과 톱을 도맡아 하던 후배가 곁에 앉았다.
워낙 유명한 친구라서, 난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인사를 한적은 없었다. 그 후배가 나를 보며 물었다.

- 선배님이 그 유명한 뮤즈 선배시죠?

- 응? 나 알아요?  

- 그럼요. 이야기를 하두 많이 들어서, 계속 누굴까 했었거든요.

  '어떻게 유명한걸까? 도대체'

- 선배님

- 응?

- 근데 선배님은 혼자서 도서관에 가시고, 밥도 혼자서 먹고, 늘 바쁘게 책을 안고 어딘가로 뛰어다녀서 전 그때까지만해도 '뮤즈 선배는 고독한 시인'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뵈니 그렇지가 않아요.

- 아... 그래. (고독한 시인!이라니... 정말 슬픈 이야기다.)

그리고, 후배는 나에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비밀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선배님께는 말할 수 있을것 같았어요.

- 그래.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이 말로 끝이났다.

- 선배님 여자친구 있으세요?

생각해보면, 시간도, 돈도, 여자도 없는 청춘이었지만, 시간도 돈도 여자도 모두 넘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친구가 그 말을 했을때도, 비참하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뿌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와 눈을 맞추며 진지하게 말하던 그 젊은 청춘들은 잘들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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