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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file #1  :  airport.jpg (103.8 KB) Download : 82
subject  :  (소설) 비오는 공항에서의 해후





그는 자신의 얼굴이 비추이는 대리석 바닥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일그러진듯도 하고, 우는 듯 보이기도 했다.

희고 긴 손가락을 뻗어, 실오라기 하나 붙어있지 않은 갈색 양복 상의에서 담배를 찾는다. 담배 한개피를 꺼내 습관적으로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보니, 문득 자신의 손가락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하릴없이 손을 이리저리 뒤집어 본다.

여섯개의 손가락이 바닥에 조용한 파문을 만들어내며 흘러내렸다.

인천국제공항 27번 게이트는 너무도 한산했다. 작은 서류가방을 안고 졸고 있는 남자, TV의 뉴스 앵커의 목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점보기가 만들어내는, 마치 신입연주자가 콘트라베이스를 조율할때처럼 조심스러운면서도 약간은 거친듯한, 깊은 중저음의 엔진소리 뿐이었다. 그것이 이 세계의 전부였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주로가 보이는 창가로 바투 다가선다. 15도의 각도로 깎인 유리창밖으로 빗방울이 모였다가, 서서히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린다.

비행기에서 몇 안되는 손님을 맞으며 좌석을 정리해주던 타이항공의 앳된 승무원이 좁은 비행기 창을 사이에 두고 그의 모습에 잠시 시선을 둔다. 남자는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하다. 양복은 잘 재단되어 몸의 실루엣을 손에 잡힐듯 드러내주고 있었고, 갈색바탕에 검은 무늬가 촘촘히 들어간 옷감은 비오는 날에 더욱 단정한 느낌을 전해줬다. 승무원은 좌석 정리도 잊은 채, 자리에 앉아 그 남자를 투명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창가에 방울방울 맺힌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이 맺힌 물방울은 커다랗게 모이는가 싶으면 이내 주루룩 흘러내리고 만다. 손바닥을 유리창에 가져다 댄다. 조심스럽고도 부드럽게 그는 손가락으로 몇개의 물방울위에 손을 얹는다.

승무원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건네려는 듯 보여, 흠칫 놀란다.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지만, 이내 자신의 모습이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으리란 걸 생각해냈다. 그 남자의 눈동자가 보인다. 흐린 날씨, 점점이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어떻게 그 사람의 눈동자가 이리도 선명히 보이는 걸까? 이유는 모른다.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그의 하얀 손과 깊은 눈동자를 바라만 볼 뿐이다.

남자는 먼곳으로 막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때, 그의 눈에, 아니 유리창의 물방울속에 한 여인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의 깊은 갈색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을 깜빡여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자의 모습은 처음엔 작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점점 더 가까워진다. 유리창에 닿아 있던 그의 손가락이 굽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떨군다.

승무원은 그가 자신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는 갑자기 당황스러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다. 그는 이 비행기를 타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27번 게이트엔 이륙 허가를 기다리는 이 점보기밖에 없다. 그는 정말 이 비행기를 타게 될까?

공항의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이륙허가을 기다리는 타이항공 287편 비행기의 탑승수속은 이제 3분내로 마감된다.

남자는 여자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음을 안다. 유리창의 빗방울 사이로 그녀의 모습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린다.

그리고, 남자는 뒤돌아 섰다. 동시에 창가에서 남자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그녀는 그러나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탑승수속을 밟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일까?

남자는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을 뗀다. 그의 희고 긴 손가락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가 서 있는 곳엔 키가 작고, 짧게 커트한 머리의 여자가 마주 서있다. 남자는 여자를 안는다.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서로를 깊게 포옹한채 말이 없다.

세계의 시간은 브레이크를 밟은 듯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빗방울이 하늘로부터 천천히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고, 비오는 공항의 모든 것은 이내 풍경화의 정물처럼 멈추어 버렸다. 멀리 떠나려 했던 남자도 그에게서 떠나려 했던 여자도, 이 공항의 비처럼 그렇게 멈추어 버린채, 서로를 굳게 잡고 있었다. 이제 비는 그들의 눈에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흘러내릴뿐이었다.

그리고, 그 두사람을 배경으로 인천 국제공항 27번 게이트에 정박중이던 타이항공 286편은 둔중한 소음을 내며,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모든 것은 순간이었으나, 그 날의 비오던 공항은 이세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처럼 그렇게, 그렇게 또다른 세계를 이루며 정물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나의 말) 난 공항에 가면 늘 슬픈 마음이 된다. 어딘가로 떠나고, 누군가 떠나가고, 지친 어떤 이는 돌아오고...... 아무리 생각해도 공항만큼 슬픈 장소는 없는 것 같다.

어찌된 일인지, 공항에 갈때면 늘 깊은 슬픔이 마음을 적셔온다. 한동안 공항 기둥에 머리를 기댄채 서 있었다. 전에 만난 예쁜 아가씨가 말했다.

'어렸을적 아빠가 출장갔다 돌아올때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 아빠품에 안겼어요. 감격의 상봉장면은 매번 그렇게 이어졌죠.'

머릿속에 떠오른 그 장면은 어쩐지 정말로 진지한 상봉처럼 느껴졌다.
기둥에서 머리를 뗐다. 양복 단추를 잠그고, 넥타이를 고쳐맨다. Landing 사인이 들어온 항공기의 편명을 확인한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려 넓은 공항청사를 둘러본다. 나를 향해 뛰어오는 작은 소녀는 어디에도 없다.

'나중에 제가 뛰어나가 드릴게요.'

거짓말. 나는 이미 랜딩기어를 내린채, 피곤한 날개를 흔들며 활주로를 내달려 멈추어 서 있는걸.

Deep Blue in the Air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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