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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subject  :  (글) 흰둥이와 나
형 집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

결혼을 앞두고 어차피 세탁기를 사려고 했으니, 우리집 세탁기를 보내주고 새 세탁기를 사기로 했다.

여자친구와 토요일 저녁에 집앞 하이마트에 들렀다.

참고로 나는 하이마트에 가끔 가곤 했었는데 갈때마다 놀라는게 있다.

우선 엄청나게 많은 직원수와 그에 비해 엄청나게 한산한 고객수.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어떻게 이런 매장이 망하지 않고 7년간 운영되는가...란 점이다.

특히 이곳의 서비스란게 참 기이한 것이, 직원이 많은만큼 일단 문으로 들어서면 기본적으로 두명의 직원이 달라붙어서 한명은 문을 열고, 다른 한명은 뭘 도와드릴까요? 이런 식이다. 고객에 비해 직원이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 직원들이 주는 도움이나 친절은 매우 사소한 부분에 국한되어 있고, 실제로 물건을 사서 결제를 한다거나, 제품에 대해 상세한 질문을 하는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경우엔 오히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결제를 하려고 서 있는데, 무려 두명의 카운터 직원이 있었음에도 한명은 어딘가에 사적인 내용의 전화를 하느라 신경도 안쓰고, 다른 직원은 또다른 직원과 잡담을 하느라 결제를 해주지 않는 것이다. 황당한 사실은 고객님, 제가 결제를 해드리겠습니다...라고 결제 카운터까지 따라붙은 매장직원이 내게서 신용카드를 받아 약 50센티를 이동하여 아무도 없는 결제카운터에 서있으면서 어찌된 일인지 카운터 직원에게 '결제해주세요!'란 말을 차마 못하고 쭈뼛되고 있었단 사실.

결국 이 매장의 친절은 문을 열어주고, 뭘 사시겠습니까?라는 정중한 질문과 귀찮게 2층까지 졸졸 따라다니고, 결재카운터에서 신용카드를 받아 50센티정도 카드를 이동시켜주는 친절인 것이다. 물론 결제를 안할때는 안면을 싹 바꾸며 잘가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 일관성은 장점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인터넷에서 주문하기엔 배송시간도 걸리고해서 가격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면 이곳에서 사기로 하고 다시 들렀다.

역시 텅텅 비어있는 주차장에 난데없는 주차요원이 나타나 후진 주차를 하고 있는 뒷쪽에서 부산하게 뛰어다니며 주차를 방해하는가 싶더니 정중하게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역시 그 뒤는 앞에서 설명한 그 순서대로 친절한 대접을 받으며 세탁기를 구경했다.

원래 사려던 세탁기는 LCD창이 없는 세탁기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130만원이란다. 인터넷가격보다 5만원 정도가 비쌌지만 평소엔 20만원정도 비싼 편이었으니 어쩐지 싸게 느껴졌다. 2만원만 깎자고 했더니 자기가 책임지고 만원은 깎아 드리겠단다. 그리고 대신 서비스로 24피스 그릇세트를 주겠다고 호언했다.

여자친구는 2만원깎아주지 않으면 사지 않겠다고 했지만, 매장직원이 앳돼보이고 또 순진한 청년 같기에 그냥 사기로 했다. 1층에 내려와 결제를 하다가 우연히 눈을 돌려보니 오픈 기념행사로 구입가의 1만원 할인을 실시한다는 벽보가 보였다. 매장직원은 자기돈 내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은 행사의 일환이었다. 뭐 이딴 뻔한 수작이 있나 싶었는데, 직원은 또 어디선가 약속했던 그릇세트를 가져왔다. 그릇세트는 24피스가 아니라 12피스였다. 허허.

그 순진해 보이는 직원은 가격할인제도나 사라져버린 12피스에 대한 아무런 설명은 없었다. 다만 사소한 친절을 생명으로 하는 매장답게, 괜찮다는데도 굳이 내 차까지 손수 그릇세트를 실어줬다.

뭐, 그건 그렇고... 세탁기가 3일후에 배달이 되어왔다.
설치해놓고 뿌듯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어? LCD가 있는 모델이 온 것 아닌가? LCD가 있는 모델은 없는 모델과, 정가로는 20만원이 비싸고, 하이마트가격으론 10만원, 인터넷 가격으론 5만원이 비싸다.

그 순진한, 아니 순진해 보이던 총각이 모델을 잘못 입력한듯 싶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총각은 휴무중이라던 여직원은 그 총각과 연락을 했다며 다음과 같은 이상한 말을 전해왔다.

자신이 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가 그 LCD가 있는 모델을 너무 원해서(사실 단 한번도 말한적 없음), 자신이 특별가에(인터넷보다도 싸게!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싸게! 그것도 오프라인매장에서!) 그 제품을 보내드렸단다.

"고객님께서 혹시 원하지 않으시는건가요? 교환해드릴 수도 있지만, 더 좋은 제품이니 그냥 쓰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콜!'이라고 외치며 전화를 끊었다.

필시 그 바보처럼 순진해 보이던 총각은 주문을 잘못낸게 들킬까봐 거짓말을 둘러댄것이리라.

결국 이상한 매장과 사소한 친절, 그리고 거짓말쟁이 바보처럼 순진해보이던 총각의 기괴한 조합이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그리고 난 지금 LCD창에 뜨는 신기한 문구!(예를들어 액체의 농도가 적당하므로 바로 헹굼에 들어갑니다!...같은 뭔가 싸이버뉴론하이테크놀로지틱한 문구)를 보며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 그 매력적인 문구는 이 드럼세탁기와 대화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흰둥이.

나중에 LCD창을 통해 흰둥이가 물을지 모른다.

아내의 유혹에 나오는 '니노'가 누구아들인가...란 물음처럼, 주인님, 저는 누구의 아들인가요?라고...

그럼 난 담담히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너는 LG트롬이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은 우리집 앞에 있던 하이마트의 작은 친절이 너를 낳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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