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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subject  :  자작소설-2)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들
네모난 방은 귀퉁이조차 그늘의 얼룩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얀색이었습니다. 흰색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손을 짚으려 했지만, 어쩐지 벽에 닿는 모든 것은 하얗게 사라질 듯 해, 손을 거두었습니다.

문득 아카시아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듯해 코를 훔쳤는데 붉은 피가 묻어났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얀방 구석에 난 쪽창을 따라 들려왔습니다.

‘피터가 너무 조용한데, 가 보겠니?’

어린 저는 마당 한구석에 있던 작은 강아지 피터의 집으로 갑니다. 걸음을 뗄때마다 그림자가 짙어집니다. 마침내 제 몸은 그림자속으로 까맣게 묻혀버립니다. 생명의 불이란 표현은 말 그대로인듯 합니다. 불이 꺼지자 그 존재가 밝혀오던 것들은 어둠속으로 가라앉아 버립니다. 어머니 역시 피터를 안고 있는 저를 본 순간 고풍스런 건물이 솜씨좋게 해체되듯 조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찰칵! 암전.

피터는 어머니에게도 빛을 나눠 주고 있었던 걸까요? 하얗게 질린 채 주저앉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얼굴과 옷이 온통 검은 피로 물든 소녀는 캄캄해져버린 개를 안은 채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귀가한 아버지는 오래된 빵처럼 딱딱하게 굳은 피터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두 세 번의 동작으로 그 일을 해냈죠. 내심 감탄했습니다. 우리 둘은 반보정도의 거리를 두고 말없이 산에 올랐습니다. 어둑해지는 숲은 기묘하게도 나뭇잎과 썩어버린 나무둥치의 입체적인 경계가 더욱 또렷해진 듯 했습니다.

삽을 내려놓은 아버진 담배를 입에 물었습니다. 먼발치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봉분 없는 피터의 무덤을 바라봤습니다. 새로 덮인 흙이 허리가 잘려나간 풀들과 뭉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습니다.

“무슨 표시를 해둬야 할 것 같아요.”

“왜?”

“다시 찾아와서...... 기도해 주려구여.”

저는 울먹였고, 아버지는 흰 한숨을 토했습니다. 뿌옇게 흩어지는 연기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죽은 것을 추억할 필욘 없다. 피터가 죽었다는 건, 이제는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고개를 들어봤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사라진 뒤였습니다. 다만 담배의 끝동만이 빌딩의 섬광등처럼 붉게 타오를 뿐이었죠. 만약 그날의 정경이 이토록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을 줄 알았다면, 난 사라진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회로의 스위치가 전환되듯, 그날을 경계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고, 결국 난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됐으니까요.

피터를 땅에 묻고 나란히 현관문을 들어섰을 때, 주방에선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와 어머니가 식탁 앞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언가를 확인하듯 저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다가, 머리를 감싸 쥐고는 식은 국을 냄비에 넣고 다시 데웠습니다. 유난히도 조용한 저녁식사였어요. 중학생이던 오빠는 식사시간의 불문율을 깨고 리모콘을 찾아 TV를 켰죠. 누구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뉴스가 흘러나왔고, 오빠는 채널을 바꾸진 않는 것으로 타협하는 듯 했죠.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오자 식탁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침묵이 조금은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었습니다.

저녁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릅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했을 때에도 또렷한 의식만큼은 풍선처럼 방안을 둥실둥실 떠다닐 뿐이었습니다. 저는 베개를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늘은 오빠 방에서 자래.”

자고 있는줄 알았던 오빠는 말없이 옷장으로 가서, 여분의 이불을 꺼냈습니다. 까칠한 군용 담요. 자신이 덮던 이불을 제게 덮어주고, 오빠는 따가운 감촉이 나는 군용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오빠?”

“응”

“엄마 아빠는 잘까?”

“아마”

한동안 말없이 쌕쌕 숨을 쉬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습니다. 그리곤 오빠 다리에 슬며시 다리를 올려놨습니다. 오빠는 이불 속으로 손을 뻗어 제 손가락을 잡아줬어요.

“근데, 피터...... 진짜 죽은거야?”

“응”

“왜 죽었지?”

“몰라.”

“아빠랑 같이 산에 묻어주고 내려왔어.”

“무서웠어?”

“아니 별로. 그냥......”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다시 커다란 풍선이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베개로 떨어진 눈물 때문에 한쪽 볼이 축축해졌습니다.

"아빠가 그러는데 피터가 죽은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래."

"아빠가 그랬어?"

"응"

오빠는 제 손가락을 잡은 채 조용히 벽쪽으로 돌아 누웠습니다. 그리고 마치 벽에게 이야기하듯 말했습니다.

"어른들의 말이 정답은 아냐. 숨을 쉬지 않을 뿐이야. 피터는... 그냥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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