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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snowcountry
homepage  :  http://www.musenote.com
subject  :  (여행기-3) 파리에서의 이틀

(시계방향 : 공항바깥으로 나와 시험삼아 한장, 지하철역, 지하철내부)

찰스 드골공항에 도착했다. 한무리의 젊은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왼쪽으로 연결된

GARE(역)터미널로 가서 RER-B선에 올라 Denfert-Rochereau로 향했다. 파리의 지하철은 서로 무릎을 대고 마주 앉는

구조인데, 좁고 불편하다. 다행히 평일 오후임에도 교외를 달리는 전철은 한산하다. 나역시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 사람들을 둘러봤다. 손님들 중엔 큰 개를 데리고 타는 사람도 있다. 여행내내 어딜가나 개를(그것도 큰개다) 끌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보신탕이란 주제는 감정이입이 쉬운 논쟁거리일 것이다.

 


한겨울임에도 옷을 두껍게 입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실제로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고 말이다. 대개는 후드티와 점퍼를 같이 입거나, 캐시미어 소재의 코트를 입고 있다. 문득 담배를 물고 코트깃을 올린채 파리의 거리를 헤매던 까뮈의 사진이 생각났다. 세계 각국에서 파리지앵을 꿈꾸는 이들이 파리를 찾는다지만, 프랑스 영화와 소설과 수필과 철학과 역사에 일찌감치 진력이 난, 나같은 이들에겐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도시일뿐이다.




(사진: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作)

때문에 첫날부터 차를 빌려 다른 도시로 떠날까도 생각해봤지만, 너무 피로할 듯 싶기도 하고 뭔가 정보도 얻으며 정리를 하고 첫걸음을 떼어야 할 것 같아 민박집을 예약해 놓은 참이다.


 


그러나 선입견은 현실로 이어진다...랄까? Alesia역에 도착해 약도대로 찾아봤지만 민박집은 찾을 수 없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물어도 도통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약 삼십여분간을 물어물어 도착한 민박집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베낭여행하는 학생들로 북적였고, 도미토리는 2층침대를 6개나 빼곡이 들여놔 발디딜틈이 없었다. 당장 숙소를 바꾸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여의치 않았다. 생각해보면 단지 이틀동안 잠만 잘곳인데 어떠랴 싶은 마음에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찍 잠이든 터라 오전 6시반쯤 눈을 떴다. 일찍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렌트를 하기로 한 몽빠르나스 역까지 다음날 새벽에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민박집 바로 앞에 허츠 영업소가 있는게 아닌가! 바로 들어가 예약변경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추가비용없이 가능하다고 한다. 바로 예약을 변경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이거 어쩐지 느낌이 좋은걸?'...이란 착각을 하면서... 오늘은 대략적인 파리관광을 하기로 했다.


 


다시 한산한 오전을 달리는 지하철에서 나와, 출구로 향한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개선문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놀랍다. 일부러 파리의 지하철공사와 관광공사가 연출한 것은 아니겠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개선문의 광경은 솔직히 멋졌다.



(부지런한 관광객들과 그들을 찍고 있는 내가 낯선 나)


개선문 앞의 관광객들을 구경하다가 샹제리제 거리를 따라 걷는다.
누군가 개선문부터 시작해서 걷기시작하면 군사박물관이나 콩코드 광장, 루브르까지 갈 수 있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터라 여행용으로 구입한 도보용(?) 신발을 믿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여행길내내 동행한 아디아즈 2호)

 


오전의 샹제리제 거리는 역시 한산하다. 그 때문인지 쇼핑몰들 역시 평범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명동이나 압구정동을 오전 10시쯤 걷는것과 비교할만 하달까? 쇼핑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선 미안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




(명품구매 아르바이트를 청하는 중국인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파리스러웠는지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보니 도로가 주변을 눈덮인 나무로 장식한다며 하얀 페인트를 전나무에 뒤집어 씌우고 바닥에는 고형스티로폼을 눈처럼 보이게 깔아놓은 게 곳곳에 보인다. 추하다. 원래 파리에 대한 환상이 없던 나로서도, 이 정도의 도시미화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 어떻게 '예술의 도시'란 칭호를 얻게되었는지 그 홍보마케팅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됐다.


얼마전 뉴스데스크에서 파리 특파원이 재밌는 보도를 한꼭지 했다. 파리에 환상을 갖고 있던 일본인 관광객들이(특히 미소(みそ) 녀들이) 실제 파리의 지저분함과 무질서, 불친절함에 충격을 받고 병원에 실려오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연평균 이십여명은 정신질환을 호소하며 실려온다니, 안타까운일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파리관광을 하는 일본인이 최소 이십명이상은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뭐 꼭 나쁜 일만은 아닌 듯 하고...


(실제 기사내용...)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1463703_1548.html

 


그래도 파리가 부러운 것은 멋진 박물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샹젤리제 거리가 끝나는 곳에 경찰청을 돌아나오니 파리국립박물관이 눈에 띈다. 문화체험이 지원되는 법인카드를 자랑스럽게 창구에 내밀었다. 그런데 직원이 결제승인이 안떨어진다고 한다. 카드를 받아 자세히 보니 유효기간이 2006년 11월로 만료된 것이 아닌가! 쿠쿵!! 사실 이점에 대해선 충격이 두배였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여행준비를 하면서, 법인카드의 유효기간을 점검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흠, 뭐 일년이나 남았으니 충분하군...'이라고 생각했다. 난 만 11개월 14일간을, 2006년이 아닌 2005년인줄 알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국립박물관 돌계단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잃어 버린 1년을 안타까워했다. 파리는 내게서 돈뿐 아니라 일년이란 엄청난 시간마저 앗아갔다. '아... 파리.... 이건, 뭐.....'


 


침울해진 기분을 뒤로하고 정신을 차린 건 얼마가 지난 후였다. 어차피 긴 여정속에, 잃어 버린 일년이나 정산처리되지 않을 비용 따위야 사소한 일이다. 여행이나 삶이나 마찬가지다. 시간과 돈은 궁극의 종결을 생생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겐 중요치 않다. 더 멋지게 인용해 말한다면 '창조적 인간은 결코 완벽히 불행할 수는 없다.'랄까? 후후...... 이렇게 빨리 정신적 충격에서 회복된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힘차게 바지를 털고 일어나 루브르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곧 길을 잃었다.


 


 



(군사박물관 가는 길..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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